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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18; 여신 '살루스(구원)'

by Ahuviאב 2023. 12. 18.

 

 

귀신의 왕 바알세불 제우스의 자손인 여신 살루스(라틴어: salus, 안전, 구원, 복지의 여신)의 호칭인 "살루스 포풀리 로마니(Salus populi romani)"는 이탈리아어로 '로마인의 구원'과 '수호자'라는 뜻으로, 카톨릭(정통 기독교, 거룩한 공회) 하늘의 여왕 루시퍼(샛별, 새벽별) 마리아(창 49:18 살루스)의 호칭이다.

바알숭배 종교인 기독교와 여신숭배

기독교 바이블: Genesis 49:18 Latin: Vulgata Clementina

바알숭배 종교인 기독교(제우스 숭배교)가 변개한

불가타역: Salutare tuum expectabo, Domine. 
영어직역: I have waited for thy Salus(마리아의 호칭) O Dominus.

한글직역: 도미누스(제우스의 호칭)여 나는 당신의 구원자 여신 살루스(귀신의 왕 바알세불 제우스의 자손)를 기다리나이다.

히브리어 원문 불가타역 70인역
고유명사
예슈아(구원)
야훼의 자손
메시아
여신
살루스(구원)
제우스의 자손
정령(다이몬)
여신
소테리아
제우스의 자손
정령(다이몬)

귀신의 왕 바알세불 제우스의 자손인 여신 살루스(라틴어: salus, 안전, 구원, 복지의 여신: 기독교 바이블 창세기 49:18)는 할아버지 태양신 아폴로, 아버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Ἀσκληπιός)의 딸이다. 개인과 국가 모두의 안전과 복지(웰빙, 건강, 번영)를 상징하는 로마의 여신이다. 그녀는 때때로 그리스 여신 히게이아(Hygieia)와 동일시되었다. 

 

그녀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여신 중 하나다. 그녀는 살루스 헤르 세모니아(Salus Her Semonia 농경과 파종의 여신)라고도 불리며, 두 신은 각각 '콜리스 살루타리스(Collis Salutaris)'와 '무시알리스(Mucialis)'에 로마의 사원을 가지고 있었고, 알타 세미타(Alta Semita) 지역에 위치한 퀴리날레(Quirinal)의 인접한 두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살루스 신전은 기원전 304년 삼니움 전쟁(기원전 4~3세기) 중 독재자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기원전 291년 집정관)'에 의해 "살루스 포풀리 로마니(Salus populi romani 마리아의 호칭)"로 선정되었으며, 302년 8월 5일에 봉헌되었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 제우스의 자손인 여신 살루스(라틴어: salus, 안전, 구원, 복지의 여신)의 호칭인 "살루스 포풀리 로마니(Salus populi romani 마리아의 호칭)"는 이탈리아어로 '로마인의 구원'과 '수호자'라는 뜻이다. 놀라운 사실은 바알숭배 종교인 기독교(제우스 숭배교)가 19세기에 로마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파올리나 또는 보르게세(Paolina o Borghese) 예배당에 있는 마돈나와 귀신의 왕 바알세불 제우스의 아들(ΙΧΘΥΣ) 사기꾼 아기 예수를 묘사한 비잔틴 이콘(성화)에 붙여진 명칭이다. 

▲Salus Populi Romani  살루스 포풀리 로마니 ( 로마인의 수호자 여신 살루스, 건강 또는 구원)

살루스 포풀리 로마니(로마인의 수호자 여신 살루스, 건강 또는 구원)는 로마에서 존경받는  카톨릭(정통 기독교, 거룩한 공회) 하늘의 여왕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칭호이다. 금색 바탕에 복음서를 들고 있는 마돈나와 어린 예수의 비잔틴 양식 이콘(성화)은 현재 많이 덧칠되어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보르게세(Borghese) 예배당에 보관되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콘(Salus Populi Romani 마리아의 호칭) 근처에 마지막 안식처로 사용할 수 있는 매장 보관소를 건설했다.

 

성상(Salus Populi Romani 살루스 포풀리 로마니 )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교황 재위 기간인 서기 590년 로마에 도착했고, 교황 그레고리 16세는 1838년 8월 15일 교황 칙서 Cælestis Regina(천국의 여왕)를 통해 이 성상에 정식 대관식을 거행했다. 교황 비오 12세는 이 형상에 다시 왕관을 씌웠고 1954년 11월 1일 여신 마리아(살루스)의 해에 공개 종교 행렬을 명령했다. 바티칸 박물관은 이 성화(이콘)를 청소하고 복원하여 2018년 1월 28일에 교황청 미사를 거행했다.

 

마리아(Maria) VS 미리암(Miryam)

고유명사 마리아(Maria, Μαρία, Mary)의 이름은 남성형 마리우스(Marius), 여성형은 마리아(Maria: 로마인 마리우스 가문의 씨족명)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사람 이름), 남성의, 남자다운, 남성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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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루스 포풀리 로마니(마리아의 호칭)는 고대 로마 공화국의 법률 체계와 이교도 로마인의 수호자 여신 살루스(라틴어: salus, "안전", "구원", "복지") 숭배의식의 호칭이다.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통해 헤브라이즘의 유일한 복음(יהוה = ישוע) 신앙과 헬레니즘의 잡신숭배(다원주의) 신앙을 혼합하여 바알숭배 종교인 기독교(제우스교)에 이 문구가 여신 마리아(살루스)의 칭호로 승인되었다.

 

1534년 'Assumption Day'(성모 몽소 승천 축일, 8월 15일)에 맞춰 몽마르트의 노트르담 사원에서 조직된 예수회는 창립자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하늘의 여신 마리아(살루스) 숭배 사상에 영향을 받아 천주교 안에서 성모 마리아 숭배 교리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늘의 여왕 음녀(바벨론의 창녀) 마리아(별칭: 루시퍼, 살루스) M십자가

이처럼 천주교(천신교) 안에 성모 마리아(살루스) 숭배 교리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예수회는 최초로 예수회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를 즉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는 교황선출 다음 날인 3월 14일 아침 하늘의 여왕마리아(살루스) 숭배에 열심인 예수회 출신답게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찾아 하늘의 여왕 성모 마리아(살루스) 제단에 꽃을 바치고 기도하는 것으로 공식일정을 시작하였다.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마돈나(Madonna)와 귀신의 왕 바알세불 제우스의 아들(ΙΧΘΥΣ) 사기꾼 아기 예수를 묘사한 비잔틴 이콘(성화)은 가이우스 파비우스 픽토르(Gaius Fabius Pictor 기원전 269년 집정관)의 명령에 따라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가문(고대 로마를 다스리던 귀족 계급)'인 파비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祖父)프라이노멘(praenomen)은 마르쿠스(Marcus: 신들의 왕 유피테르의 아들 마르스에서 따온 이름)라고 한다.

 

아버지 가이우스 파비우스 픽토르는 로마인의 건강과 국가의 번영을 책임지는 "살루스(salus)" 여신의 신전에 직접 그린 그림을 기증해 "픽토르(Pictor: 화가)"라는 코그노멘(별칭)으로 일컬어졌다. 형제로 기원전 266년 집정관 누메리우스 파비우스 픽토르(로마 공화국 집정관)가 있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살루스) 교회

그리고 살루스 숭배의 중요성은 로마 국가의 보존을 위해 매년 8월 5일 1년에 한번 로마인들의 복지와 행운을 위해 '아우구리움 살루티스(Augurium Salutis)'가 열렸다. 그녀의 숭배는 이탈리아 전역에 퍼졌다. 문학 출처에는 주피터(제우스)의 딸 행운과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 상징 지구본, 풍요 뿔)와 여신 스페스(Spes: Latin for "Hope")의 관계가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개인 건강의 여신이자 로마식 이름인 히기에이아(Hygieia)인 발레투드(Valetud)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나중에 살루스(Salus)는 또한 개인 건강의 수호자가 되었다. 기원전 180년경에는 살루스의 족보는 증조부 귀신의 왕 바알세불 제우스다. 할아버지 태양신 아폴로, 아버지 의술의 여신 아스클레피오스와 함께 살루스를 기리는 제사 의식이 거행되었다(Livy xvii, 로마의 역사 39권). 콩코르디아 신전에는 살루스의 동상이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뱀과 그녀의 연관성은 기원전 55년에 아실리우스(M. Acilius)가 주조한 동전에서 처음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녀의 축제는 3월 30일에 거행되었다.

제우의 손자 아스클레피오스 숭배

기독교 하나님 제우스의 손자이자 태양신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기원전 291년, 당시 로마를 뒤덮었던 역병에 대처하기 위한 구원투수로서 에피다우루스로부터 로마로 도입되었다. 티베르섬에 아스클레피오스를 위한 신전이 마련되었고, 신전이 병원의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제정기 이후에도 이곳은 계속 병자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남았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로마에서도 아폴로, 살루스와 함께 건강을 주관하는 신으로 자리 잡았다. 로마에서 안전과 안녕을 주관하던 신인 살루스는 점차 아스클레피오스의 딸이자 위생, 청결, 건강의 여신인 히기에이아와 동일시되었다.

▲바알숭배 종교인 기독교(제우스 숭배교)의 수호신 귀신의 왕 바알세불 제우스, 손자 아스클레피오스, 증손녀 살루스(히기에이아: 마리아의 호칭)의 이미지가 말해주듯이 바벨론종교의 전신인 기독교(맘몬종교)는 타락한 천사 사탄(루시퍼: 하늘의 여왕 마리아의 호칭) 숭배 종교임을 알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기독교에 대하여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루시퍼 샛별: 하늘의 여왕 음녀 마리의 호칭)로 가장하나니. 계시록 17: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사탄이 창작한 인류 최후의 맘몬종교 기독교)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시록 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기독교 바이블에 나오는 우상들)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기독교 바알사제들의 달콤한 감성의 설교)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예를 들자면 바알숭배 종교인 기독교 그리스도인(제우스의 자녀들)들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자랑하는 뉴에이지 판테온 소설에 바이블에 부처님(석가모니)이 무려 최소한 2598회나 나온다.

 

'부처님(부야따킨)'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붓다고사(Buddhaghosa: 오른쪽) (5세기경 인도 "테라바다" 불교 주석가, 번역가 및 철학자)가 스리랑카(Theravada 테라바다: 상좌부 소승불교) 마하비하라(Mahavihara) 학파의 '장로들(elders)'에게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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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엘로힘(Elohim)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예레미야 51:7 바벨론은 야훼(YHWH)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뭇 민족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미쳤도다.  
 
요엘서 3:13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계시록 14: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엘로힘(Elohim)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로마의 의사들도 스스로를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예인 아스클레피아데스라 칭했고, 황제의 주치의들을 통해 황제들도 아스클레피오스 숭배와 연계되었다. 특히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주치의였던 크세노폰에 대한 총애로 그의 출신지이자 아스클레피오스 숭배로 유명한 코스섬에 대한 공납의 면제를 추진하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제국을 순방하는 과정에서 페르가뭄의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을 제우스-아스클레피오스 신전으로 대규모 개축하였다. 카라칼라 황제는 스스로의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치유받기 위해 페르가뭄의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 직접 참배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스클레피오스 숭배가 로마에서도 일반화된 것은 아스클레피오스 숭배의 다양한 양상이 나타나는 주화가 로마시에서도 지속적으로 주조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전쟁터에서 부상과 질병에 자주 노출된 로마 군인들 사이에서도 아스클레피오스는 인기 있는 신이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군대 주둔지역에서 발굴된 비문에 자주 나타나는 신격이었고, 이 비문을 세운 이들은 대부분 군대 내의 의료인력들이었다. 비문만이 아니라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바쳐진 제단과 군 병원 내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바쳐졌던 성소까지, 군대와 아스클레피오스의 연계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근거는 다양하게 발견된다.


아스클레피오스의 로마 도입이 집정관을 비롯한 정무관들이 주관한 것이었고, 이후의 숭배 역시 일반 대중들만이 아니라 황제 및 군인들과 밀접히 연계된다는 점에서 로마에서의 아스클레피오스 숭배는 공동체, 혹은 그에 속한 개인들의 건강이라는 개념에 대해 로마의 국가권력이 어떻게 관심을 표현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