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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상징,자료

독일 복음주의 교회와 루터

by Ahuviאב 2023. 7. 16.

"독일 기독교인(Deutsche Christen)"의 상징인 십자가(1934년)와 나치 독일의 휘장이 동일하다. 마틴 루터의 저서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Martin Luther, 1483-1546)에서  “그들이야말로 진정 거짓말쟁이요 피에 굶주린 개 때 들이다."라고 하였다. 이 논문에서 "마틴 루터"는 유대인을 "비열하고 음탕한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그들의 혈통, 할례, 율법에 대한 자랑은 오물로 여겨져야 합니다"라고 묘사한다. 

 

독일 복음주의 교회(Deutsche Evangelische Kirche1933 -1945년

독일 복음주의 교회 ( Deutsche Evangelische Kirche ) 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복음주의 교회 연맹(German Evangelical Church Confederation)"을 계승한 교회다. 반유대주의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압력 단체인 독일 기독교인(Deutsche Christen) 그룹이다. 

 

"요한 하인리히 루드비히 뮐러"(Johan Heinrich Ludwig Müller,1883년 6월 23일 – 1945년 7월 31일)는 독일 신학자, 루터교 목사, 친나치 "독일 기독교인(Deutsche Christen)" 신앙 운동의 지도자였다. 1933년에 그는 나치당에 의해 "독일 복음주의 교회(Deutsche Evangelische Kirche)"의 Reichsbischof(제국을 위한 주교)로 임명되었다.

 

1933년 7월 23일 베를린의 성모 마리아 교회 에서 교회 평의회 선거 기간 동안 "독일 기독교 선전" 귀신들의 왕 바알세불 제우스의 상징인 스와스티카 만자()와 바알의  저주의 사형틀 "라틴 십자가(Latin cross,†) 또는 크룩스 이미사(Crux immissa)"가 새겨진  플래카드(placard) 현수막을 들고 있는 독일 나치 돌격대원들

Deutsche Christen(독일 기독교인)의 상징과 로고

독일 기독교인들의 이데올로기(이념)의 선구자는 독일 제국의 다양한 개신교 그룹으로, 베를린 "궁정 설교자 Hofgeistlichkeit" 과거 왕실 또는 귀족 법원과 관련된 성직자 또는 영적 지도자인 "아돌프 슈토커(개신교 독일 신학자)" 에게서 롤모델을 찾았다.

독일 기독교인들은 1932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개신교 내에서 인종차별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운동을 벌였다. 그들은 기독교를 나치 이데올로기와 화해시키고 개신교 교회를 나치의 원칙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1932년, 1935년, 1937년에 "독일 기독교인(Deutsche Christen)"인들이 사용한 로고

히틀러와 "마르틴루터" 그리고 반유대주의

마틴루터의 말기에 발행된 팸플릿의 그의 글 "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On the Jews and Their Lies)"에서 루터는 8가지 행동을 유태인들에게 행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1. 모든 유대인의 회당를 불태우라
2. 유대인의 거주지들을 파괴해라
3. 유대인의 "성경(토라)"을 압수해라
4. 랍비들이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라
5. 유대인들의 여행을 금지하라
6. 유대인들이 비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릴 때 이자를 금지하고 유대인의 재산을 압수해라
7. 유대인들에게 육체적 노동을 시켜라
8. 기독교인들이 사는 곳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라


마틴 루터 저서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Martin Luther, 1483-1546)에서  “그들이야말로 진정 거짓말쟁이요 피에 굶주린 개 때 들이다."라고 하였다. 이 논문에서 "마틴 루터"는 유대인을 "비열하고 음탕한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그들의 혈통, 할례, 율법에 대한 자랑은 오물로 여겨져야 합니다"라고 묘사한다. 

 

또한 루터는 유대인의 회당이 "마귀의 배설물로 가득 차 있고 ... 돼지처럼 뒹굴며" 회당은 "고칠 수 없는 창녀이자 사악한 창녀"라고 썼다. 히틀러는 루터의 반유대주의 글들을 굉장히 익숙해했고 아주 존경했다.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히틀러는 루터를 독일의 가장 위대한 3명의 위인으로 칭송했다. 프리드리히 대왕, 리처드 바그너와 함께 1938년 11월 9-10일 나치는 "수정의 밤(Kristallnacht)" 지역에 유태인 학살을 시작했다. 그들은 독일에 있는 모든 유대인교회(synagogue)를 전부 파괴하고 35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다. 그리고 그날의 학살은 <마틴루터의 생일을 기념해서 했다>고 발표한다. 수정의 밤이라는 이름은 "포그롬(Pogroms, 대 박해)"이 발생하자 폭력이 확산되면서 회당, 가정집, 그리고 유태인 소유 상점들이 약탈 및 파괴되면서 독일 거리가 흩어진 유리 조각으로 채워진 것에서 착안된 것이다.

 

유명한 역사학자인 "윌리엄 쉬러(William Shirer)"는 그의 저서에서 독일 개신교회(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두 가지 요인 중 하나는 "개신교 프로테스탄트"의 아버지 루터의 반유대적 선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기독교인 운동(German Christians movement)

오스트리아 독수리를 질식시키는 유대-볼셰비키 뱀을 묘사한 1920년 반유대주의 기독교 사회당 포스터와, 1933년 베를린 에서 <루터의 날을 축하하는 독일 기독교인들>과 "Hossenfelder(호센펠더) 주교"의 연설 장면과 과 독일 기독교인(Deutsche Christen)들의 상징인 '스와스티가 만자()'와 '크룩스 이미사(Crux immissa)'가 결합된 깃발이다.

독일 기독교인(Deutsche Christen)은 실제로 1932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복음주의 교회 내의 압력 단체이자 운동이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독일 개신교를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및 "지도자 원리(Führerprinzip)"을 포함하는 나치즘의 이데올로기적 원칙에 맞추는 것이었다.

독일 기독교인들은 나치 이데올로기를 독일 개신교의 가르침과 관습에 통합시키려 했다. 그들은 교회에서 유대인을 배제하는 것을 옹호하고 아리아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장려했다. 그들은 또한 Führer(지도자)로서 Adolf Hitler(아돌프 히틀러)의 손에 궁극적인 권한과 의사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지도자 원리(Führerprinzip)"의 개념을 강조했다.

 

이 운동은 1931년 튀링겐에서 독립적인 교회 정당으로 설립되었으며 1933년 "독일 복음주의 교회(DEK)" 내에서 중요한 입지를  얻었다. "독일 기독교인"들은 "독일 복음주의 교회(Deutsche Evangelische Kirche)"의 여러 지역 교회에서 지도자 직책을 맡는 데 성공했다.

"독일 기독교인(Deutsche Christen)"이 취한 중요한 조치 중 하나는 <유대인 혈통의 기독교인>을 교회에서 배제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 기독교인을 비아리아인으로 분류하고 그들을 교회 직분에서 제거하기를 원했던 교회 헌법에 "아리안조항(Arierparagraph)" 특정 차별적 조항을 도입했다. 국가 사회주의 하에서 이러한 유형의 규정은 유대인 인구와 로마 소수 민족을 대상으로 했다. 이러한 배제 정책과 교회를 아리안화하려는 시도는 "독일 복음주의 교회" 내에서 심각한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원칙을 옹호한 결과 "독일 복음주의 교회(Deutsche Evangelische Kirche)" 내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초기 28개 지역교회(Landeskirchen) 중 23개가 분열을 경험하여 1934년 대립하는 칼 바르트, 디트리히 본회퍼 등 기독교 "신학자(θεολόγος)"들이 이끄는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가 설립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