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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

부처의 손가락뼈 ‘불지사리(佛指舍利)’ 숭배

by Ahuviאב 2023. 11. 22.

 

▲석가모니의 불지사리가 보관돼 있던 원래 법문사와 사리탑. 사리탑 지하에는 지하궁전이 있으며 불지사리를 보관한 사리함이 전시돼 있다. 원래 법문사는 새로 조성한 전체 법문사 단지의 우측에 있다.

중국에는 부처의 유물 세 개가 있다. 법문사(Famen Temple)에 있는 부처의 손가락 유물 외에도 베이징 영광사(Lingguang Temple)에 치아가 있고 난징 치샤 사원(Qixia Temple)에 두개골 조각이 있다. 사리라(Śarīra) 즉 불교 유물은 874년부터 법문사 지하 성소에 보관되어 왔다.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부처의 손가락뼈 '불지사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9대 기적 가운데 하나이자, 불교계 최고 성물(聖物)인 중국 산시성(陝西省) 법문사(法門寺)의 ‘불지사리(佛指舍利)’는 기원전 4세기경 부처가 열반에 든 뒤 7일간 다비(화장)식을 거쳐 남은 4cm 크기의 손가락뼈다. 

▲고타마 붓다(석가모니)의 불지사리(佛指舍利) 손가락뼈가 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8개의  사리함

당시 부처에게서 나온 7만 개에 달하는 유물(Śarīra) 사리 가운데 유일한 진신지골 사리로 유네스코와 불교계,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인정한 유일한 국보급 보물이다. 사리라(Śarīra)는 불교 유물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이지만 일반적으로 불교의 영적 스승이 화장한 재에서 발견되는 진주나 수정 같은 구슬 모양의 물체를 가리킨다. 대승열반경에서는 화장 후 부처의 유물을 다투(dhātu)라고 부른다.

 

고타마 붓다(석가모니)의 손가락뼈 유물은 4차례 해외로 유출됐다. 1994년 11월 29일부터 1995년 2월 29일까지 태국, 2002년 2월 23일부터 2002년 3월 30일까지 대만, 2004년 5월 26일부터 2004년 6월 5일까지 홍콩에 있었다. , 2005년 11월 11일 - 2005년 12월 21일 한국이다.

▲법문사 북쪽에 새로 조성한 높이 148m 사리탑. 양손이 사리탑을 감싼 모양이다.

법문사는 1700년 역사의 고찰(古刹)이다. 특히 석가모니의 진신지골사리(眞身指骨舍利·왼손 가운뎃손가락 중간마디 뼈, 이하 불지사리 佛指舍利)를 모신 곳으로 유명하다. 불지사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9대 기적이자 중국 최고의 국보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유일한 현존 지골사리로 전국시대에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2005년 12월 21일 한국에 나들이 온 바가 있다.

 


당나라 때 황제들은 30년마다 불지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법문사 진신보탑(眞身寶塔)의 지하궁전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후 여러 차례의 지진과 홍수 등으로 땅속에 묻히는 바람에 세상에 잊혀졌다. 1981년 폭우로 무너져 내린 탑을 1987년 보수하는 과정에서 진신보탑의 지하궁전 후실의 비밀 감실(龕室)이 발굴되면서 유물 3000여 점과 함께 다시 빛을 보게 됐다.

불지사리를 직접 보게 되면 한 가지 큰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도 불지사리를 친견한 이후 주석직에 올랐다는 소문이 있다.

 

대만에서 부처의 불지사리를 안치했다는 양안(兩岸)

법문사 부처의 불지사리에 관해 가장 인상 깊고 화제가 되는 이야기는 2002년 대만에서 부처의 불지사리를 안치했다는 양안(兩岸) 이야기이다.

▲불광산 승려의 7제자가 무릎을 꿁고 부처의 손가락 유뮬을 불광산에 안치 했다.

2002년 2월, 성운대사가 대표단을 이끌고 법문사에서 부처의 손가락 사리를 대만으로 모셔와 예배를 드렸는데, 이는 37일간 지속되어 대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참배자 수는 8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시안에서 부처님의 손가락 사리(舍舌)가 대만으로 왔을 때, 타이베이와 가오슝에서는 50만 명이 넘는 신도들이 이를 환영하기 위해 거리에 줄을 섰고, 타이완의 모든 신자들의 예배를 촉진하기 위해 타이페이 체육관, 삼협진광명에서 거행되었다. 

사찰, 타이중 체육관, 난터우 중태산 등 길을 따라 제단을 세우고 가오슝 불광산에 도착하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산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특히 10만 명이 밤새도록 부처의 명호를 불렀던 가오슝 경기장에서는 숨이 막힐 정도로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부처의 손가락 사리를 보고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는데,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고, 어떤 사람은 기쁨에 넘쳤으며, 어떤 사람은 마치 고타마 붓다(석가모니)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불광산사를 창건한 ‘대만의 스승’ 성운대사는 부처의 손가락 유물이 사람들의 마음에 자비와 지혜를 불러일으키며, 한 번의 자비심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고 한다.

 

세계 각지에 300여 개의 도량을 건립했으며 미술관, 도서관, 출판사, 서점, 이동병원 등을 세웠고, 대만에 불광대학과 남화대학, 미국에 서래대학, 호주에 남천대학과 광명대학을 각각 설립했다.

 

1977년 불광대장경편수위원회를 발족해 ‘불광대장경’과 ‘불광대사전’ '중국불교경전보장백화판' 등을 편찬한 것도 대사의 큰 업적으로 꼽힌다.